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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서양의 도시공간 형성 (중세)

by 메모메모610 2025. 3. 21.

1. 중세 시대_부정적인 단어로는 암흑기라고도 합니다.  
(암흑기: 500-1,000년 도시는 축소되고 농촌이 발달하며 봉건사회가 발달한 사회)
: 르네상스와 고대의 중간에 있는 시기라는 의미로, 무엇인가로 변화되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가 간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고대에서 근대로 가는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1.1 시대 구분
1) 중세 전기 (500년 무렵 – 1,000년 무렵)
- 게르만인의 이동 시기
- 도 십X, 봉건제도, 주로 성벽에 모여서 마을처럼 살았다. (장원)
- 도시 간, 마을감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중세의 전기는 상업의 중심지라 할 수 없다.
2) 중세 중기 (1,000년 무렵 – 1,300년 무렵)
- 교황 권력이 막강해지고 도시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
- 십자군 전쟁이 있던 시기라, 중요한 시기다. (중기)
- 대학은 11세기 이후부터 (중기)
- 대학 이전에는 교회에서 교육했다. 수도원 지원 차원 대부분 수도원에서 했다. 
3) 중세 후기 (1,300년 무렵 – 1,450년 무렵)
- 절대 왕정 또는 공화정으로 향하기 위해 시작하는 시기.

건축적으로는
로마네스크 11~12세기
고딕 13~14세기
르네상스 15세기
독일에서는 중세를 3시기로 나눈다.
6-11세기 게르만의 남하
10-13 중간 중세 – 도시들의 성장
14-15 후기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말을 4~7세기
초기 중세 8-13 센;
후기 중세 14~15세기 (르네상스)


1.2 중세 시대의 시작_도시의 붕괴와 농촌의 성장
: 로마제국 몰락 이후 최초의 5세기 동안 경제적, 정치적 위기의 가장 두드러진 결말은 도시의 붕괴와 생계를 대지에서 얻을 수 있는 농촌을 주민이 분산되었다. 
1) 전원사회 (농촌)
: 봉건적 정치조직의 기초위에 형성 (대성당, 수도원, 성)
: 대토지 소유(농지)로 분할, 그 중심에 영주의 거주지. 각 영지는 ‘장원’에 의해 관리됐다. 그곳에는 곡물창고, 가축우리, 농민이나 영주에 대해 책임을 가진 관리인 거처.
: 장원에 종속되어 있는 토지
① 영주를 위한 토지
② 영주에게 종속하는 농노들에게 나누어진 토지
③ 미경작지(상점, 늪지, 목초지): 땔감을 만들고 가축을 방목하고 야생의 과실을 채집할 수 있다.

2) 도시
- 사회의 주변에 위치
- 이미 행정의 중심지의 기능은 상실
- 단순히 제조와 교역의 중심지로서 약간의 지위 차지

1.3 중세 시대의 부흥
:10세기 말 이래로 유럽의 경제가 다시 상승하기 위해 시작했다. 
인구 증가 (950년 약 2,200만명에서 1350년 약 5,500만명) 농업생산이 중대해지고, 공업, 상업이 다시 중요해졌다 .
이러한 경제 상승의 원인
① 최후로 침입해 온 민족(아랍인 정착
② 3모작, 소나 말에 명예를 얹는 새로운 방법, 수차에 의한 제분소의 보급 등과 같은 농업 기술적인 혁신
③ 지중해에서 국제적인 거래와 관련해 상업의 중심지로서 다른 도시의 부흥을 자극했던 항구도시(Venice 영향

2. 중세 시대 주요 변화
2.1 게르만족의 서유럽 정착
: 서로마 제국 안에 게르만족(야만족) 왕국들이 하나둘 세워지면서 유럽은 점차 중세 시대의 윤곽이 잡혀가기 위해 시작했다. 게르만족 왕국들은 실질적인 면에서 로마의 계승자였으므로, 로마의 토착 주민도 야만족 집단에 맞추어 살아가야 했다. 
: 왜 게르만족이 서유럽 쪽으로 갔는가?
370년에서 470년 사이 로마 제국의 동쪽 언저리에 자리 잡아 강한 결집력을 과시한 아시아계 훈족 (목축경제를 영위하고 정치적 통합의 이루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의 공격을 받고 쫓겨난 동고트족의 이동을 시작으로 프랑크족, 서고트족이 서유럽에 정착하기 위해 시작했다. 
동고트족은 이탈리아 땅, 프랑크족은 갈리아 땅, 서고트족은 스페인 땅 

2.2 기독교의 팽창, 600년에서 1500년 
: 기독교는 애초 중동에서 출발했지만,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적 특성이 완연한 종교로 변모해 갔다. 
: 중세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서유럽에 사상적 통일성을 마련해 준 것도 기독교였다. 하지만 1500년 무렵 교회 내부에는 분열과 함께 교리 및 제도에 대한 비판이 일게 되고, 이를 계기로 기독교는 종교개혁이라는 대격변에 휘말리게 이르렀다. 

2.3 9-10세기 유럽의 바이킹족 남하 침공_노르만인의 해운 비즈니스
: 샤를마뉴 (카를루스) 대제의 사후인 9세기 중반에 서유럽이 분열, 이러한 혼란의 틈을 북방 게르만족이 유럽을 침략했다. 

2.4 이슬람의 확산
-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7~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에 의해 지배받았다. )
:7세기 중동 지역-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 이슬람교에 의한 통일이 진행되기 위해 시작했다. 아라비아 전역을 장악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중동, 북아프리카 동로마제국의 상당 부분을 정복했다. 그리고 스페인을 정복하고 프랑스까지 진군, 투르. 프와니에 전투 (북진을 막았다. 15세기경 다시 온전한 스페인 땅이 외었다. 스페인 여행하다 보면 서유럽+이슬람의 양식이 많이 있다.)에서 패하면서 침략이 멈췄다. 
이슬람교 세력은 10세기, 당나라와 중앙아시아에서 군사적 충돌, 이때 중국인 포로에게서 종이 만드는 법이 이슬람 세계에 전해졌고, 종이가 문화 보급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2.5 십자군 전쟁 
_ 수혜를 입은 나라: 베네치아. 해양기술 측면에서 기술력으로 이득을 보았다. 
_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문화력에 있어 촉매 역할
_ 국가 간의 왕래를 왕성하게 만들었다. 
: 유럽 세력과 이슬람 세력 간의 격렬한 전쟁. 애초 십자군 운동이 촉발된 것은 1095년 비잔틴 사절이 교황 우르바누스 2세를 찾아가 소아시아에 들끓는 튀르크족으로부터 동방의 교회를 수호해 달라고 청원하면서 시작됐다. 
‘12세기의 르네상스’
십자군 원정으로 유럽 세계는 오리엔트, 동방에 접촉할 수 있었고, 이는 중세의 닫혔던 세계를 열어젖히는 계기가 된다. 레반트 무역(동방무역)이라고 불리는 이집트, 중동 지역과의 교역이 십자군 원정 이후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12세기의 유럽, 지중해 세계에 유례없는 호경기를 가져다줬다.
: 인구의 확대, 화폐경제, 시장의 확대 등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도시 경제가 번창했다. 

12세기 유럽 경제가 급격히 성장할 때, 중국에서도 송나라가 경제성장으로 번영을 누렸다. 유럽 경제와 중국 경제를 이어주는 길목 실크로드, 몽골이 이를 지배했다. 실크로드의 부로 몽골이 급성장하고, 13세기 몽골은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 유럽에서 중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세력권이 형성됐다. 

2.6 비잔틴 제국 (동로마 제국)

2.7 교회 건축의 붐 (종교 권력, 교황 권력이 높았다)
:중세에서 교회는 행정권, 세금 징수권을 장악하는 한편 행정기관, 질서유지의 중심적 역할도 담당했기에 교회를 중심으로 마치 둘러싸듯 유럽 각지에서 마을이 건설되었다. 
12~13세기 이후의 유럽은 유례없는 호황기와 더불어 건축 기술이 비약적으로 개량되면서(고딕건축) 교회 건설의 붐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아미앵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 등 등이 대표적이다. 교회는 도시 전체의 작품이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동예배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