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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로마 시대 말에 나타난 도시의 변화들

by 메모메모610 2025. 3. 21.

3. 로마 시대 말에 나타난 도시의 변화들

3.1 줄어든 도시: 도시 면적이 줄어들었다 .
: 식민지가 줄어듦에 따라, 로마의 주요 건물은 주교의 건물이 되었고 원형 극장이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ex. Perigueux 3~4세기경 줄어들었다. 도시 중심 기능만 남고 (교회 성) 원형극장은 군사적 목적으로
Tours – 원형경기장을 중심으로 성벽(별도의 성벽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곳: 원형 경기장)
원형 경기장의 사용 = Nim, Poitier
Poitier 프랑스 – 원형 경기장이 도시의 티슈 속에 녹아들었다. 

3.2 도시 밖에 새로운 도시
: 로마 도시 밖에 있던 공동묘지에서 새로운 도시가 생성됐는데 이유는, 성자의 무덤이 후에 교회가 되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순례자들이 모이게 되고 순례의 길을 형성하게 되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새로운 도시가 형성됐다. 
ex. Sant use, Xanten

3.3 이동된 도시
: 도시 중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
Tours – 초기 원형 경기장을 중심으로 생성 후에 다른 곳에 새로운 중심이 생겼다 .
Limoges – 특징은 고대의 기준 규범에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자유롭게. 불규칙한 도로, 건물에서도 불규칙함이 나타난다. 

4. 중세 도시의 변화
4.1 도시국가의 발전
- 농촌에서 일이 없는 사람들이 도시로 집중됐다. 
- 봉건 조직의 틀 밖에서 생활하는 직인이나 상인이 증가했다. 
- 중세 초기의 방어용 도시 (성곽도시 – borg)는 그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작아서 시의 성문 앞에 성밖(suburb)로가 불리는 지구가 발생했다. 이 성 밖은 그 중심보다 쉽게 성장했고 교외나 그 밖의 지구(교회 수도원, 성곽)을 포함해 새로운 도시의 성벽을 구축했다. 
- 포부를 그의 발달: 성벽 밖으로의 도시 성장 

새로운 조직 발생 
: 애초에는 사적인 단체로 생겨났으나, 곧 주교나 봉건영주와 싸워 공적인 권력을 갖게 됐다. 도시 지자체, 즉 독자적 법률을 갖고서 각 개인이나 집단의 특권을 지배하지만, 그 경제적 특전을 여전히 고려하는 국가가 탄생했다. 
그 시민 정부의 조직은 아래와 같다. 
① 대평의회: 가장 중요한 여러 가문의 대표자들로 구성
② 소 평의회: 실행위원회로서의 기능을 지님
③ 선거 혹은 추첨으로 결정된 일정 수의 행정관
이것에 대해서 일부의 시민을 대표하는 단체가 대치하게 된다. 
동업자 조합이나 자경단으로서 자신들의 통솔자를 지명했다. 
이 외에 도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주교나 수도원의 종교적인 세력도 존재했다.
중세 도시 국가는 생활물자의 공급을 농촌에 의존, 다소라도 넓은 지역을 실제로 통솔했다. 
그리스 도시와의 차이는 농촌의 주민에게 균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즉 ‘폐쇄된 도시’였다. 그 경제적, 정치적 관계는 국가적 내지는 국제적인 스케일로 확대되었으나, 그 정치는 도시 주만의 한정된 관심으로 판단되었다. 시민은 그리스의 민회와 같이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통일적인 집단이 아니었다. 평의회에서 대표자가 되는 지배계급은 점차 확대되어 갔으나, 급료를 받는 노동자를 포함하기에 이르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권력투쟁에 휘말리게 되자, 그들은 패하게 되었으며 정부는 일련의 귀족이나 또는 그 가족만을 받아들였다. 즉, ‘자치도시’에서 ‘군주제도기’로 되었다. 

4.2 농촌의 도시화
도시의 발전 → 농촌의 변화 자극, 촉진
상업 도시는 식료품과 원료를 매입하고 공업제품이나 상품 판매
농촌은 농업생산을 높이고 새로운 식민농지 개발이나 기존의 경작지를 보다 합리적으로 이용했다. 
장원의 구조 조직은 이러한 과제에 적응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급자족경제에 기초를 두고 있었기에 위기에 봉착했다.
각각의 농원은 모든 생산물을 경작하고 자신의 소비에 필요한 기구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제 장원은 상당수의 외래의 자유노동자를 고용해 영주들은 개간하고 경작하는 것이 자유로운 토지에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장원의 영주에 의해 건설되었지만, 신도시는 예전의 것과 같은 조직을 복제하지는 않았다. 노동자의 개인적 자유를 보증하고 자율적인 행정부를 갖추고 있으며, 거의 항상 주민들 중에서 선발된 행정관에 의해 관리, 정치적, 법률적인 면에서는 봉건적인 결정에 따르고 있는 부분이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국가의 도시조직을 모방했다. 
신도시건설 이유 → 다음과 같은 경제적, 군사적 이유에서 유럽 세계의 주변부에...
① 왕이나 프랑스 봉건귀족이나 백년전쟁에서 싸운 영국 봉건귀족이 (자신의 영토 이외 지역을 지배하거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건설했던 남프랑스의 바스타드라고 불리는 성채도시
② 그리스도교도의 군주들이 서서히 이슬람인으로부터 되찾은 스페인의 ‘Poblaciones’라고 일컬어지는 도시
③ Teuton이고 (게르만족)의 기사가 슬라브인에게서 정복했던 동독일의 식민도시

중세의 격자형 신도시
- 1100년경부터 다시 등장
- 새로운 부지에 건설되거나, 혹은 이전의 ‘유기적’인 도시 형태가 확장되는 부분을 격자로 건설
*바스타드: Astir (건설한다는 중세 프랑스어)
① 방어 ② 경제적인 정책 ③ 종교적 측면
→ ‘도시는 완벽한 공동체이다’라는 개념
- 바스타드에 거주하기 위한 주요 동기는 농지에 가깝고 다른 경제적 특권을 지닌 도시 내에 거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는 것. 
- 모든 바스타드가 새로운 부지에 건설된 것은 아니고, 기존 마을을 기반을 계획된 선을 따라 재개발된 경우도 많았다. 격자형 가로망이 모든 바스타드의 기본이 되었을지라도 많은 경우 격자형은 표준형 계획은 아니었으며, 도시의 일부분에만 적용되었다. 
- 대표적인 바스타드: 프랑스의 Carcassonne – 루이 11세에 의해 13세기 초에 건설. 이탈리아 도시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성벽을 이중으로 구축했다. 
*바스타드의 유형
- 요새를 세우고 그 안에 상업적 조직을 구성 했다. 요새 기반의 계획도시
- 격자형의 도시 
- 피레네의 4개 도시 
- 계획을 해서 세웠지만 직선을 사용하지 않는 계획: 독일의 프리부르
- 때로는 도시 밖으로 그 성장을 계획하는 경우: 독립적으로 카르카손
- 도시 형태가 불규칙, 그렇지만 분명히 계획된 도시: 못 파지에

도시 국가의 발전과 농촌에 있어서 신도시의 건설은 14세기 중엽에 인구의 급속한 감소 (일련의 약성 유행병, 특히 1348-49년의 흑사병의 유행에 따른 결과) 및 경제활동의 쇠퇴 때문에 중단되었다. 

중세 문화는 고대문화와 같은 명확한 모델을 정하려고 하는 방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의 일반적인 형태를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세의 도시는 모든 가능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역사적, 지리적인 모든 상황에 자유롭게 적응하고 있었다. 

5. 중세 도시의 특징
5.1 불규칙한 도로
_성안에 모여 살다 보니 밀도가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도로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중세도시의 도로망은 불규칙하다. (이슬람 경우만큼이나)
그러나 도로는 통일적인 공간을 형성하도록 조직됐다. 방향을 알 수 있으며, 지구 또는 가로의 일반적인 외관을 파악할 수 있다. 도로는 동일하지 않고, 중요한 대로와 소도로의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광장은 도로에서 독립해 건물로 에워싸여 있는 것이 아닌, 도로가 합류하는 즉 도로의 확장에 해당한다. 소도로만은 단순한 도로였으나, 그 이외의 것은 여러 가지 용도, 즉 통행, 휴식, 거래, 회합을 위한 공간. 주택은 거의 다층이며, 공공의 공간으로 열려 있으며, 도로나 광장의 환경을 형성하도록 정면 외관을 갖고 있다.